처음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상점에 갔는데, 무슨 물건이 그리도 많은지 깜짝 놀랐다. 물건의 종류도 다양하고 같은 물건인데도 쓰임새와 개인의 선호도에 따른 상품들이 상점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더구나 시장이나 백화점에 가니 이건 아예 경천동지할 지경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상품이 많아 구경하는데도 한나절이 걸렸다. 도대체 무슨 물건을 구입해야할지? 이것도 좋고, 저것도 괜찮고 모두다 사고 싶었다. 사실, 한국에 처음 오면 이탈주민들을 교육하는 곳에서 은행에서 통장과 카드발급 받는 것과 사용방법까지 상세히 가르쳐 주고 물건도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하라고 알려준다. 이런 교육을 받은 기억이나 시장이나 상점, 백화점 등에 가면 사고 싶은 생각을 억제하고 있다.
북한에 있었을 때는 물건을 사려면 상점이나 장마당에 갔고 국경연선 주변에서는 선주문을 하고 화교들이 중국에서 물건이 들어오면 돈을 주고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했다. 물건의 종류도 단순하고 다양성도 거의 없다. 사실 북한에서 달리기 장사를 해 본 적이 있다. 북에서 달리기장사는 농촌들에서 원하는 공업품목들을 가지고 직접 찾아가서 식량과 바꾸는 장사를 말한다. 예전에는 남한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문판매가 있었다고 들었다. 이러한 판매방식은 물건의 종류가 제한되어 상품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쇼핑도 할 수 있고 홈쇼핑도 가능한 곳에서 살고 있으니 신천지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여성 옷은 사이즈도 다양하고 색상이나 디자인도 많아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북한에서 대충 주문해서 착용하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번은 여성 속옷을 사는데 너무 예쁘고 저런 옷을 한번 입어봐야지 생각하고 핸드폰으로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음성으로 사이즈 얘기를 하는데 정확히 몰라서 1. 2. 3번을 부르는데 3번을 눌렀다. 물건 배달이 왔는데 포장을 뜯어 보니 내 몸 치수와 맞지 않았다. 쇼핑몰 판매자가 체형이 어떠냐? 치수는 얼마냐?를 물었는데 몰랐던 거다. 아! 남한에는 이렇게 속옷까지도 맞춤형으로 입는구나 하면서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남한의 상품들은 다양할 뿐만 아니라 품질의 기능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북한에서도 화장품을 판매하는데 신의주화장품이나 평양화장품에서 판매하는 봄 향기나 고려인삼 화장품이 인기가 있다. 그런데 화장 지우는 세수비누는 구입하기 힘들다. 남한에는 화장을 지울 때 쓰는 폼 클렌징도 여러 상품이 있고 세수비누도 종류가 많다. 그래서 제품을 골라서 사용한다. 이런 기능성 화장품은 북한에 있을 때는 사용하지 못했다.
상품이 다양화되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 참 좋은 세상이다. 그래도 한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된장, 간장, 메주, 고추장 등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식품이다. 이것이 기계화되어 규격품으로 나온다는 게 조금은 아쉽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메주를 띄우고, 장 만들고, 김치를 담그고 했는데, 이제는 사서 먹게 되었으니 어머니의 손맛도 사라질 판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음식을 집집마다 만들고 문화적 풍습도 함께 보존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물론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수 있다. 그래도 통일이 되었을 때 남북 주민들이 전통음식을 통해 역시 우리는 한민족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통식품조차 편리함과 상업성으로 나아가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쓸데없는 기우일까?
